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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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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근로장려금 지급일 및 신청자격 지급액 2022년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이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 3월1일부터15일까지 반기 신청을 시작으로, 2022년 5월1일부터 31일까지 정기신청이 시작됩니다. 근로장려금 제도란 무엇인가요?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 사업자(전문직 제외)가구에 대하여 가구원 구성과 근로소득, 사업소득 또는 종교인 소득에 따라 산정된 근로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근로를 장려하고 실질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 제도입니다. 근로장려금은 가구원 구성에 따라 정한 부부합산 총급여액 등을 기준으로 지급액을 산정합니다. 2022년 새해부터 달라지는 부분은 근로장려금 소득 상한 금액이 인상됩니다. 기존에 애매한 기준으로 받지 못하셨던 분들은 올해에 늘어난 소득 기준을 꼭 확인해 보시고, 근로장려금을 신청하..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10일(신사) 정조 즉위식 00-03-10[01] 성복(成服)하였다. ○ 사시(巳時)에 내가 최복(衰服)을 입고, 종친, 문무백관이 모두 최복을 입었다. 내시가 예찬(禮饌)을 영좌(靈座) 앞에 진설하였다. 내가 장(杖)을 짚고 들어가 판위(板位)로 나아가서 부복하여 곡을 한 다음, 예를 의식대로 행하고 여차(廬次)로 돌아왔다. 00-03-10[02]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였다. ○ 영의정 김상철 등이 구전으로 달하여, 면복 차림으로 여차(廬次)에서 나오기를 청하여, 답하기를, “성복을 막 하고 나니,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비록 위로 자전의 하교를 어기지 못하고 아래로 군정(群情)을 거스를 수 없어서 부득이 따르기는 했다마는, 지금 최복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으려 하니, 차마 못하겠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여 더욱 감..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9일(경진) 00-03-09[01] 약원이 구전으로 달하여 죽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구전으로 달하기를, “영상(靈牀)을 지금 옮겨 봉안하려 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애모(哀慕)하는 효심(孝心)에 망극함이 더할 것입니다. 원미(元糜) 한 그릇을 올리니 옥체를 생각하시어 애써 드시도록 하소서. 그리고 중궁전과 혜빈궁에도 드시도록 권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망극하다. 어리석고 모진 목숨을 전처럼 부지하고 있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만 증폭될 뿐이다. 원미는 중궁전과 혜빈궁에 봉진(奉進)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00-03-09[02] 영상을 옮겨 봉안할 때, 대신(大臣) 이하로부터 하인(下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곡(哭)하며 따르라고 영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9[0..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1776) 3월 8일 신하들이 왕위 계승하기를 재청하다. 00-03-08[01] 약원이 구전으로 달하여 죽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구전으로 달하기를, “밤 사이에 체후가 어떠하십니까? 신들이 우려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이에 감히 죽을 올리니 슬픔을 억제하고 억지로라도 드시도록 하소서. 중궁전과 혜빈궁에도 올려서 보살펴 드리는 정성을 다하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망극하다. 중궁전과 혜빈궁에 미음을 드시도록 권하겠다.” 하였다. 00-03-08[02] 원의(院議)로 달하여 사위(嗣位)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도승지 서유린(徐有隣), 좌승지 채홍리(蔡弘履), 우승지 서유경(徐有慶), 좌부승지 오재소(吳載紹), 우부승지 김문순(金文淳), 동부승지 이양정(李養鼎)이다. ○ 원의로 달하기를, “왕통(王統)을 계승하는 것은 국가를..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7일(무인) 00-03-07[01] 약원(樂院)이 구전으로 달하여 미음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약방이 구전으로 달하기를, “신들이 삼가 보건대, 저하께서 감정을 추스리지 않은 채 곡읍(哭泣)만 하시고 전혀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십니다. 또 삼가 생각건대, 중궁전과 혜빈궁의 슬픔이 망극하시어 필시 손상이 많을 것입니다. 실로 타는 듯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이에 감히 녹두죽(綠豆粥)을 올리니, 슬픔을 억제하시고 애써 드시도록 하시는 한편, 이어서 중궁전과 혜빈궁에도 드시도록 권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망극하다는 뜻으로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 중궁전과 혜빈궁에는 권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00-03-07[02]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서 달하여 사위(嗣位)를 청..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1776 3월 6일 영조의시신을 염하다. 00-03-06[01] 약원이 구전(口傳)으로 달(達)하여 죽(粥)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약방이 구전으로 달하기를, “삼가 듣건대, 미음을 전혀 드시지 않는다고 하니, 실로 우려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이에 감히 죽을 받들어 올리니 슬픔을 억제하고 억지로라도 드소서. 그리고 중궁전 및 혜빈궁에도 권하여 보살펴 드리는 도리를 다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모질게도 죽지 않고 또 질병도 없으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 중궁전과 혜빈궁에는 이미 드시도록 권하였다.” 하였다. 00-03-06[02]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서 달하여 왕세손의 사위(嗣位)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영중추부사 김상복(金相福), 판중추부사 김양택(金陽澤)ㆍ한익모(韓翼謨), 영의정 김상철..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5일(병자) 영조의 죽음 00-03-05[01] 묘시(卯時)에 상이 경희궁(慶熙宮)의 집경당(集慶堂)에서 승하하시었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5[02] 복(復)하였다. ○ 내시가, 평상시에 입으시던 상의 상복(上服)을 왼쪽에 매고 앞의 동쪽 낙수받이로부터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허리를 잡아 북쪽을 향해 세 번 외치기를, “상위(上位)는 복(復)하시오.” 하였다. 마치고 내려와 그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대행 대왕(大行大王)의 위에다 덮어 두고 연궤(燕几)로 발을 고정시켰다. 00-03-05[03] 역복(易服)하였다. ○ 내가 상복(上服)을 벗고 머리를 풀어 헤쳤다. 소복(素服)을 입은 다음, 윗소매를 걷었다. 중궁전(中宮殿), 혜빈궁(惠嬪宮), 세손빈궁(世孫嬪宮)이 모두 관(冠)과 상복(上服)..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4일(을해) 00-03-04[01] 시탕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4[02] 내가 흥태문(興泰門)의 막차에 나아가, 황단(皇壇)의 춘향(春享)에 쓸 향축(香祝)에 친히 어휘(御諱)를 써 넣고 이어서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 익선관과 곤룡포를 착용하고 걸어서 금재문(今在門)으로 나가 흥태문의 막차에 좌정하였다. 승지 서유경(徐有慶)이 준비한 축문을 읽고 나서 내가 친히 어휘를 써 넣었다. 향실 관원이 향축을 받들고 나갔다. 내가 이르기를, “근래에 문풍(文風)이 싹 사라졌다. 이번 과거에 혹시 볼 만한 자가 있던가?” 하니, 우의정 이은이 아뢰기를, “문풍의 진작 여부는 전적으로 위에서 인도하여 솔선수범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문관(文官)이 만약 문(文)을 숭상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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