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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일상다반사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2일(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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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2[01] 비가 내렸다.

○ 동틀 무렵부터 사시(巳時)까지 내린 비로 측우기의 수심은 1치 5푼이었다.

00-03-02[02] 시탕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2[03] 상이, 세손궁(世孫宮)이 출궁하거나 환궁할 때에 백관이 수가(隨駕)하라고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세손이 출궁하거나 환궁할 때에 으레 당상과 낭청 1원이 거행하였지만, 앞으로는 백관이 규례에 따라 수가하도록 하라.”

하였다.

00-03-02[04] 지위(紙位)를 받들고 나갈 관원은 승지로 차출하라고 영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2[05] 승언색(承言色) 한경훈(韓景勛)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였다.

○ 영하기를,

“영을 내릴 즈음에 승언색이 매우 요란스럽게 하였다. 승언색 한경훈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라. 하령(下令) 중에서 대보단에 대해 내린 영지(令旨)를 조보(朝報)에서 모두 빼 버리도록 하라. 조금 전에 내린 영지도 모두 빼 버렸는지 알아보고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00-03-02[06]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병 때문에 빈대(賓對)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차자를 진달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답하기를,

“경의 병 때문에 내가 경을 위하여 염려하고 있다. 빈대는 방금 늦추었으니, 경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더욱 신경 써서 병조리를 잘 하여 내가 우두커니 서서 경을 기다리는 마음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사관에게 가서 유시하라고 영하였다.

00-03-02[07] 상이 집경당(集慶堂)에 계시었다. 약원(藥院)이 입진(入診)하였다. 직부(直赴)한 사람들을 불러 보는 자리에 내가 시좌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2[08] 정사(政事)가 있었다. 이조 판서 서명선(徐命善)이 나왔다.

○ 정이환(鄭履煥)을 부응교로, 박천형(朴天衡)을 부교리로, 오대익(吳大益)을 수찬으로, 신광호(申光祜)를 금성 현령(金城縣令)으로, 이택원(李宅源)을 예안 현감(禮安縣監)으로 삼았다. 좌의정 겸 세손부에 신회(申晦)를, 우의정에 이은(李溵)을 모두 단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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