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6[01] 약원이 구전(口傳)으로 달(達)하여 죽(粥)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약방이 구전으로 달하기를,
“삼가 듣건대, 미음을 전혀 드시지 않는다고 하니, 실로 우려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이에 감히 죽을 받들어 올리니 슬픔을 억제하고 억지로라도 드소서. 그리고 중궁전 및 혜빈궁에도 권하여 보살펴 드리는 도리를 다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모질게도 죽지 않고 또 질병도 없으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 중궁전과 혜빈궁에는 이미 드시도록 권하였다.”
하였다.
00-03-06[02]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서 달하여 왕세손의 사위(嗣位)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영중추부사 김상복(金相福), 판중추부사 김양택(金陽澤)ㆍ한익모(韓翼謨), 영의정 김상철(金尙喆), 좌의정 신회(申晦), 우의정 이은(李溵)이다.
○ 김상복 등이 달하기를,
“천운이 이르지 않아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만났습니다. 저하(邸下)의 타고난 효성으로 괴로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모습은 그칠 바를 모르고 계십니다. 다만 생각건대, 사위(嗣位)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바꿀 수 없는 법이기도 하거니와 열성(列聖)이 이미 시행한 예입니다. 어제 해조(該曹)의 초기(草記)를 환급하신 것은 비록 우리 저하의 망극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기는 합니다마는, 천위(天位)는 잠시도 비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애써 애통한 마음을 억제하시고 속히 유사(有司)의 청을 따르도록 하소서.”
하여, 답하기를,
“망극한 가운데 차마 듣지 못할 말을 들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할 뿐이다. 경들은 다시 번거롭게 말하지 말아서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케 하라.”
하였다.
○ 재차 달하여, 답하기를,
“한 번 달하고 두 번 달할수록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만 증폭될 뿐이다.”
하였다.
○ 세 번째 달하여, 답하기를,
“내 마음이 망극하다. 경들은 다시는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00-03-06[03] 원의(院議)로 달하여 왕세손(王世孫)의 사위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도승지 서유린(徐有隣), 좌승지 채홍리(蔡弘履), 우승지 서유경(徐有慶), 좌부승지 오재소(吳載紹), 우부승지 김문순(金文淳), 동부승지 이양정(李養鼎)이다.
○ 원의로 달하기를,
“오늘날 억조 백성이 저하께 자나 깨나 바라고 있는 것은 오직 위호(位號)를 일찍 정하는 것이니, 속히 왕통을 계승하소서. 저하의 대효(大孝)로 어찌 여기에 생각이 미치지 않으십니까. 삼가 원하건대, 속히 유음(兪音)을 내리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대궐 뜰에서 달하였을 때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 재차 달하여, 답하기를,
“대궐 뜰에서 달하였을 때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 세 번째 달하여, 답하기를,
“정청(庭請)에 대한 비답에서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00-03-06[04] 양사(兩司)가 연명(聯名)으로 달하여, 왕세손의 사위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대사헌 조재준(趙載俊), 대사간 이석재(李碩載), 집의 김낙수(金樂洙), 장령 신흔(申昕)ㆍ이창한(李昌漢), 지평 심기태(沈基泰), 헌납 이평(李枰)이다.
○ 연명으로 달한 대략에,
“삼가 생각건대, 대위(大位)는 잠시라도 비워 두어서는 안 되며, 종묘 사직은 하루라도 주인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왕조의 열성(列聖)들이 이미 시행해 온 구전(舊典)이 있으니, 속히 유사의 청을 따르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이미 정원(政院)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 재차 달하여, 답하기를,
“이미 정원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 세 번째 달하여, 답하기를,
“이미 정원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00-03-06[05] 옥당이 연명으로 차자를 올려 사위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교리 정우순(鄭宇淳), 부교리 조상진(趙尙鎭), 수찬 윤동만(尹東晚), 부수찬 윤행수(尹行修)이다.
○ 연명 차자의 대략에,
“오늘날 팔도의 백성들이 저하께 우러러 비는 것은 오직 속히 대통(大統)을 계승하여 하루빨리 위호(位號)를 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원하건대, 애통한 마음을 조금 억제하시고 애써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주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어제 대신의 연주(筵奏)를 혹시 듣지 못하였는가.”
하였다.
○ 재차 올린 차자에 답하기를,
“정원이 달하였을 때에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00-03-06[06] 어제(御製)를 개간(開刊)하는 것에 대하여 전례(前例)를 상세히 고찰하여 아뢰도록 하라고 영하였다.
○ 영하기를,
“선조(先朝)에는 어제(御製)로 지어 내린 것이 매우 많으니, 비록 짧은 글이라 할지라도 편차(編次)를 정하여 개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만일 인산(因山) 전에 개간하기가 어렵다면, 1본을 베껴 내고 구본(舊本)은 퇴광(退壙)에 들이고자 한다. 이 뜻을 원상(院相)과 상의하여 아뢰도록 하라. 만약 개간할 수 있다고 한다면 마땅히 편집청(編輯廳)을 설치해야 할 것이다. 숙묘(肅廟) 당시에도 역시 어제를 개간한 전례가 있으니, 전례를 자세히 고찰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00-03-06[07] 소렴(小殮)을 하였다.
○ 시간이 되자, - 신시(申時)이다. - 집사가 먼저 용문석(龍紋席)을 설치하고, 다음에 요를 펴고, 다음에 교(絞 염습할 때 시신을 묶는 베)를 깔고, 다음에 유청 금선금(柳靑金線衾)을 깔고, 다음에 백운문 대단고(白雲紋大緞袴)를 깔고, 다음에 진홍 강사포(眞紅絳紗袍)를 깔고, 다음에 옥색자적초록 광직 삼색 중치마(玉色紫的草綠廣織三色中赤莫)를 깔고, 다음에 운문 대단 협수(雲紋大緞狹袖)와 연두색 희문단 협수(烟豆色稀紋緞狹袖)를 깔았다. 그리고 대행 대왕(大行大王)을 상(牀) 위로 옮겼다. 소렴을 의식대로 하였다. 금(衾)을 여미고 교(絞)를 묶은 다음 도로 어상(御牀)에 모셨다. 자리에 있던 자들이 모두 부복하여 곡을 하였다. 내시가 영상(靈牀)을 설치하고 신백(神帛)을 봉안하였다. 명정(銘旌)을 영좌(靈座)의 오른쪽에 설치하였다. 종척(宗戚)의 집사가 영좌 앞으로 나아가 소렴에 올리는 전(奠)을 의식대로 거행하였다.
다음은 소렴할 때 사용한 의대(衣襨)이다. 강사포(絳紗袍), 백초 횡교(白綃橫絞) - 세 개이다. - 백초 장교(白綃長絞), 유록 금선금(柳綠金線衾), 보라 향직 장의(甫羅鄕織長衣), 남공단 협수의(藍貢緞狹袖衣), 보라 공단 협수의(甫羅貢緞狹袖衣), 남공단 중치마(藍貢緞中赤莫), 연남 공단 중치마(軟藍貢緞中赤莫), 다홍 광직 도포(多紅廣織道袍), 남공단 중치마(藍貢緞中赤莫), 연남 공단 중치마(軟藍貢緞中赤莫), 자적 향직 중치마(紫的鄕織中赤莫), 초록 광직 중치마(草綠廣織中赤莫), 옥색 남선단(玉色藍扇緞), 남광직 장의(藍廣織長衣), 옥색 궁초 장의(玉色宮綃長衣), 보라 궁초 장의(甫羅宮綃長衣), 토색 유문 광직 장의(土色有紋廣織長衣), 옥색 유문사 배자(玉色有紋紗背子), 초록 유문사 배자(草綠有紋紗背子), 두록 유문단 배자(豆綠有紋緞背子), 옥색 유문단 배자(玉色有紋緞背子), 보라 유문단 중치마(甫羅有紋緞中赤莫), 초록 유문단 장의(草綠有紋緞長衣), 초록 향직 중치마(草綠鄕織中赤莫), 보라 유문릉 장의(甫羅有紋綾長衣), 보라 유문 대단 장의(甫羅有紋大緞長衣), 남유문 대단 도포(藍有紋大緞道袍), 남선단 도포(藍扇緞道袍), 남유문 대단 도포(藍有紋大緞道袍), 남선단 도포(藍扇緞道袍), 초록 대단 답호(草綠大緞褡𧞤), 유록 대단 답호(柳綠大緞褡𧞤), 다홍 광직 공복(多紅廣織公服), 남유문사 도포(藍有紋紗道袍), 초록 유문사 답호(草綠有紋紗褡𧞤), 다홍 광직 조복(多紅廣織朝服) - 치마를 갖추어 무릎을 덮었다. -, 두록 유문단 중치마(豆綠有紋緞中赤莫), 초록 광직 도포(草綠廣織道袍), 남광직 도포(藍廣織道袍), 초록 유문릉 장배자(草綠有紋綾長背子), 두록 유문단 중치마(豆綠有紋緞中赤莫), 옥색 유문단 중치마(玉色有紋緞中赤莫), 두록 유문릉 장의(豆綠有紋綾長衣), 두록 무문주 장의(豆綠無紋紬長衣), 난두색 답호(爛豆色褡𧞤), 백운문 대단고(白雲紋大緞袴), 남광직 토시(藍廣織吐手), 백광직 행전(白廣織行纏), 옥색 광직 중치마(玉色廣織中赤莫), 초록 광직 중치마(草綠廣織中赤莫), 다홍 공단 배자(多紅貢緞背子), 옥색 향직 중치마(玉色鄕織中赤莫), 초록 광직 중치마(草綠廣織中赤莫), 자적 광직 장의(紫的廣織長衣), 두록 광직 장의(豆綠廣織長衣), 보라 유문릉 장의(甫羅有紋綾長衣), 옥색 유문릉 장의(玉色有紋綾長衣), 자적 유문단 답호(紫的有紋緞褡𧞤), 침향 희문단 장의(沈香稀紋緞長衣), 다홍 유문릉 답호(多紅有紋綾褡𧞤), 옥색 광직 장의(玉色廣織長衣), 옥색 향직 장의(玉色鄕織長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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