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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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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10일(신사) 정조 즉위식 00-03-10[01] 성복(成服)하였다. ○ 사시(巳時)에 내가 최복(衰服)을 입고, 종친, 문무백관이 모두 최복을 입었다. 내시가 예찬(禮饌)을 영좌(靈座) 앞에 진설하였다. 내가 장(杖)을 짚고 들어가 판위(板位)로 나아가서 부복하여 곡을 한 다음, 예를 의식대로 행하고 여차(廬次)로 돌아왔다. 00-03-10[02]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였다. ○ 영의정 김상철 등이 구전으로 달하여, 면복 차림으로 여차(廬次)에서 나오기를 청하여, 답하기를, “성복을 막 하고 나니,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비록 위로 자전의 하교를 어기지 못하고 아래로 군정(群情)을 거스를 수 없어서 부득이 따르기는 했다마는, 지금 최복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으려 하니, 차마 못하겠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여 더욱 감..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9일(경진) 00-03-09[01] 약원이 구전으로 달하여 죽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구전으로 달하기를, “영상(靈牀)을 지금 옮겨 봉안하려 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애모(哀慕)하는 효심(孝心)에 망극함이 더할 것입니다. 원미(元糜) 한 그릇을 올리니 옥체를 생각하시어 애써 드시도록 하소서. 그리고 중궁전과 혜빈궁에도 드시도록 권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망극하다. 어리석고 모진 목숨을 전처럼 부지하고 있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만 증폭될 뿐이다. 원미는 중궁전과 혜빈궁에 봉진(奉進)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00-03-09[02] 영상을 옮겨 봉안할 때, 대신(大臣) 이하로부터 하인(下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곡(哭)하며 따르라고 영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9[0..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1776) 3월 8일 신하들이 왕위 계승하기를 재청하다. 00-03-08[01] 약원이 구전으로 달하여 죽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구전으로 달하기를, “밤 사이에 체후가 어떠하십니까? 신들이 우려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이에 감히 죽을 올리니 슬픔을 억제하고 억지로라도 드시도록 하소서. 중궁전과 혜빈궁에도 올려서 보살펴 드리는 정성을 다하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망극하다. 중궁전과 혜빈궁에 미음을 드시도록 권하겠다.” 하였다. 00-03-08[02] 원의(院議)로 달하여 사위(嗣位)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도승지 서유린(徐有隣), 좌승지 채홍리(蔡弘履), 우승지 서유경(徐有慶), 좌부승지 오재소(吳載紹), 우부승지 김문순(金文淳), 동부승지 이양정(李養鼎)이다. ○ 원의로 달하기를, “왕통(王統)을 계승하는 것은 국가를..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5일(병자) 영조의 죽음 00-03-05[01] 묘시(卯時)에 상이 경희궁(慶熙宮)의 집경당(集慶堂)에서 승하하시었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5[02] 복(復)하였다. ○ 내시가, 평상시에 입으시던 상의 상복(上服)을 왼쪽에 매고 앞의 동쪽 낙수받이로부터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허리를 잡아 북쪽을 향해 세 번 외치기를, “상위(上位)는 복(復)하시오.” 하였다. 마치고 내려와 그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대행 대왕(大行大王)의 위에다 덮어 두고 연궤(燕几)로 발을 고정시켰다. 00-03-05[03] 역복(易服)하였다. ○ 내가 상복(上服)을 벗고 머리를 풀어 헤쳤다. 소복(素服)을 입은 다음, 윗소매를 걷었다. 중궁전(中宮殿), 혜빈궁(惠嬪宮), 세손빈궁(世孫嬪宮)이 모두 관(冠)과 상복(上服)..
정조의 일기 ' 일성록 ' 즉위년 1776년 3월1일(임신)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1일(임신) 00-03-01[01] 비가 내렸다. ○ 밤 5경에 측우기(測雨器)의 수심(水深)은 3푼이었다. 00-03-01[02] 시탕(侍湯)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3-01[03] 상이 숭정전(崇政殿)에 나아가 삼일제(三日製)를 설행(設行)하였는데, 내가 시좌(侍坐)하였다. ○ 내가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를 착용하고 걸어서 금재문(今在門)으로 나가 여(輿)를 탔다. 광달문(廣達門)을 경유하여 숭정문(崇政門)으로 들어가서 동쪽 월랑(月廊)에 나아가 막차에 들었다. ○ 내가 이르기를, “식년시(式年試)의 경우 전에는 합고(合考)할 적에 간략하게 하였다.” 하니, 대제학 이휘지(李徽之)가 아뢰기를, “신이 명관(命官)과 함께 상의하여 간소하게 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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