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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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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9일(경진) 00-03-09[01] 약원이 구전으로 달하여 죽을 들기를 청하였는데, 비답을 내렸다. ○ 구전으로 달하기를, “영상(靈牀)을 지금 옮겨 봉안하려 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애모(哀慕)하는 효심(孝心)에 망극함이 더할 것입니다. 원미(元糜) 한 그릇을 올리니 옥체를 생각하시어 애써 드시도록 하소서. 그리고 중궁전과 혜빈궁에도 드시도록 권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망극하다. 어리석고 모진 목숨을 전처럼 부지하고 있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만 증폭될 뿐이다. 원미는 중궁전과 혜빈궁에 봉진(奉進)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00-03-09[02] 영상을 옮겨 봉안할 때, 대신(大臣) 이하로부터 하인(下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곡(哭)하며 따르라고 영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9[0..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즉위년 병신(1776) 3월 5일(병자) 영조의 죽음 00-03-05[01] 묘시(卯時)에 상이 경희궁(慶熙宮)의 집경당(集慶堂)에서 승하하시었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00-03-05[02] 복(復)하였다. ○ 내시가, 평상시에 입으시던 상의 상복(上服)을 왼쪽에 매고 앞의 동쪽 낙수받이로부터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허리를 잡아 북쪽을 향해 세 번 외치기를, “상위(上位)는 복(復)하시오.” 하였다. 마치고 내려와 그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대행 대왕(大行大王)의 위에다 덮어 두고 연궤(燕几)로 발을 고정시켰다. 00-03-05[03] 역복(易服)하였다. ○ 내가 상복(上服)을 벗고 머리를 풀어 헤쳤다. 소복(素服)을 입은 다음, 윗소매를 걷었다. 중궁전(中宮殿), 혜빈궁(惠嬪宮), 세손빈궁(世孫嬪宮)이 모두 관(冠)과 상복(上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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