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연예/스타뉴스

미친 연기력 대한민국 배우 한석규를 팬심으로 보다 백상예술대상 기대하며

반응형

배우 한석규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품에 출연했으며 

또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그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986년 

MBC의 일요일 아침 드라마 한지붕세가족에 조연으로 데뷔하였습니다.

잠깐의 지나가는 배역이겠지만 그에겐 남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출처-MBC)


잠시 한지붕세가족이라는 드라마를 이야기 하자면

1986년 11월 9일 첫방영을 시작으로, 1994년 11월 13일까지 8년간 방영되었다. 

한 지붕 아래 서로 다른 계층 세 가족이 펼치는 가족애를 그린

 이 드라마는 8년 동안 작가 여덟 명, 프로듀서 여덟 명, 연기자 150여 명 거쳐가 

도시 서민의 삶을 소박하게 풀어온 시추에이션 드라마였다.

제가 83년 생인데 어렸을때 일요일 아침이면 항상 보던 드라마가 한지붕 세가족이었고

당시 순돌이라는 극중 아역 배우는 굉장한 인기 스타이기도 했지요.





이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된 MBC의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출처-MBC) 스타 등용문이라 할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시즌1격에 출연한 한석규는 당대 최고의 스타 

故최진실

홍학표 

유호정

염정아씨와 더불어 출연하며 그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우리들의 천국은 다음 시즌에 

장동건 

이승연

전도연등 수많은 인기스타를 배출한 청춘 드라마였습니다.


이후 1991년 한국드라마사상 가장 명작이라 추앙 받는 여명의 눈동자에도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게 되구요.



                         (출처-MBC) 좌-여명의 눈동자   우-아들과 딸                                        

92년 아들과 딸

93년 파일럿

94년 까레이스키

이 세작품에 연달아 조연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알렸구요.


드디어 같은해인 94년 서울의달이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최민식씨와 함께

출연하여 높은 시청률과 함께 배우 한석규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출처 - MBC)


서울의 달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된 배우 한석규는 이듬해 95년

드디어 닥터봉 이라는 작품으로 충무로에 입성하게 되는데 당시 신인으로서는 파격 적으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김혜수씨와 함께 당당히 주연의 자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또한 이영화는 96년 백상예술대상에서 그에게 평생 한번 밖에 받을 수 없다는 

남자신인연기상까지 덤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이후 그는 96년 은행나무침대까지 주연을 맡게 되며 

 

드디어 97년 당시 여배우 트로이카라 불리던 전도연과 영화 접속

이미연과 넘버3

심혜진과 초록물고기 

이 세편의 영화로 한국영화 역사의 한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당시 그가 보여준 세편의 영화만으로도 그의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충분히 

설명 할 수 있구요

초록 물고기에서 "형 끊지마 끊지마 난 괜찮아 끊지마~"하는 대사와

넘버3에서 그의 대사중 이미연에게 했던

" 아직 감이 안잡히니? 임마, 누군가를 51프로 믿는다는건, 100프로 믿는다는 뜻이야... 49프로 믿는다는 건,믿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대사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잊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후 90년대 안성기 최민식 한석규로 이어지는 남자배우 트로이카 시대의 

막을 열게 됩니다.


이듬해인 98년 그는 한국 영화계에 또한번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두 영화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허진호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쉬리는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와 621만 관객 동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2016년에 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621만이라는 숫자가 그리 체감 되지 않지만

90년대 엄청난 흥행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장군의 아들도 100만을 넘지 못했고


우리나라 대표 거장 임권택 감독님의 서편제도 100만을 겨우 넘는 관객수준 이었기

때문에 쉬리가 세운 기록은 엄청난 기록이 아닐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같은해 먼저 개봉한 심은하 한석규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또한 공전에 대히트를

기록한바 있었습니다. 그당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눈물 흘리지 않는 남자와는 사귀지 말라는 이야기도 돌정도였지요.

시한부 인생을 담담하게 또 리얼하게 그려낸 그의 연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 되어있습니다.


이후 그는 99년 텔미썸딩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가

2002년 임병호 감독의 이중간첩으로 다시금 스크린에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종전에 그가 출연한 여타의 영화보다는 다소 파급력이 약했습니다.

이유는 쉬리이후 한국 영화가 남한과 북한을 소재로한 작품이 굉장히 많이

개봉하였고 그가 출연한 이중간첩또한 비슷한 소재의 시나리오로 대중들은 이미

그런 장르의 영화에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여파도 흥행 실패에 커다란 요인으로 볼수 있겠습니다.


이후 그는 2004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사건을 다룬 그때그사람들이라는 영화로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났고

같은해 주홍글씨를 통하여 다시한번 연기 변신을 합니다.


사실 한석규는 2000대에 들어와서 그가 출연한 작품들이 줄줄히 흥행에 실패 함으로써

영화계 일각과 일부 대중들에게는 그의  티켓파워가 예전같지 않아지자 많은 작품에서

볼수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2006년 다시한번 연기변신을 꾀하는 작품들에 출연하며 그의 또다른 진가를 보여주게 됩니다.

영화 구타유발자에서는 그간 그에게서 볼수 없었던 케릭터를 소화하며 

욕의 신으로 불리울 정도로 실랄하고 야만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시 2008년 눈에는 눈 이에는이 줄여서 눈눈이이라는 작품으로 오랜만에 스릴러를 통한

그의 연기를 선보이지만 역시 흥행면에서는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2010년까지 매년 한편씩의 작품에 출연하지만 

21세기 들어 10년동안 대표적인 흥행 작품은 이거다 라고 말할수 있는 영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의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라 그가 출연한 작품이 다소 난해하거나

다소 흥행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가 책을 고를때에 관점이 어떻게 변화 하였는지는 그가 데뷔 이후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다 좋더라 나쁘더라를 평가하기는 싫습니다.

다만 그가 보여준 다양한 연기와 카타르시스는 그의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도가 떨어지는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다라고 이야기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후 그는 95년 호텔이라는 드라마 이후 굉장히 오랜만에 브라운관을 통하여 그의 미친 연기력을

다시한번 가감없이 보여주는데 바로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세종대왕 역할 이었습니다.

                                                                 (출처-SBS)


한편의 드라마에서 보여준 그의 미친 존재감과 연기력은 대중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엄청난 사랑을 받게 해 주었고 뿌나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드라마의 파급력 역시 대단했습니다.



2012년 영화 파파로티와 베를린을 통해 끊임 없는 그의 연기에대한 열정을 느끼게 해주었고

2016년 현재까지도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86년 데뷔 이후 30년동안 드라마 12편 영화 22편에 출연했으며 총 22번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잠시 이색적인 수상경력이 있는데 바로 84년 강변가요제에서 무려 장려상을 수상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도 잠시 엿볼수 있었고 이후 그의 작품에서 종종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약간은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항상 묻는다고 합니다 

"너는 왜 배우가 됬느냐"

그걸 묻는 이유는 배우이전에 원래 꿈은 음대 진학해서 성악을 하는게 꿈이었지만

꿈을 접을수 밖에 없었고 연기를 하게 되었지만 

항상 느끼는게 내가 발전없이 매번 똑같은 연기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을 느껴 후배들에게 자주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의 연기는 더이상 바랄게 없이 훌륭하게 느끼지만

그 스스로가 배우로서 매일 연구하고 갈구하고 고뇌 한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누군가 한석규 그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한석규 그이름 석자 만으로도 대중들에게 어필할수 있는 그의 대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그의 미친 존재감을 자주 볼수 있길 기대합니다.



1984년 MBC 강변가요제 장려상 -《길 잃은 친구에게》

1993년 MBC 연기대상 신인상 -《파일럿》, 《아들과 딸》

1994년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탤런트부문 우수상 -《서울의 달》

1994년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서울의 달》


1995년 제6회 춘사대상영화제 신인남우상 -《닥터 봉》

1996년 제3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닥터 봉》

1996년 제1회 씨네21 영화상 신인배우상 -《닥터 봉》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은행나무 침대》

1997년 제20회 황금촬영상 최우수인기남우상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外

1997년 제1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초록물고기》

1997년 제35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초록물고기》

1997년 제35회 대종상 남자인기상 -《초록물고기》

1997년 제18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초록물고기》

1997년 제18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초록물고기》

1998년 제3회 여성관객영화상 최고의 남자배우상 -《8월의 크리스마스》

1998년 제1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연기자상 -《8월의 크리스마스》

1998년 제19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8월의 크리스마스》

1999년 제36회 대종상 남자인기상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1999년 제20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쉬리》, 《텔 미 썸딩》

2000년 제37회 대종상 남자인기상 -《텔 미 썸딩》


2011년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대상 -《뿌리깊은 나무》

2012년 제3회 대한민국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공감해주시면 어깨가 들썩거리고

덧글달아주시면 입이 ^________________________^일케 되지요 ^^



반응형